가네쉬는 인도 라자스탄의 작은 마을에서 풍부한 자연 생명으로 둘러싸인 풍경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유년 시절은 야생적이면서도 깊고 고요한 자연과의 관계에 의해 형성되었습니다. 놀이는 언제나 그의 삶에서 살아 있는 요소였습니다. 스포츠와 전통 놀이를 즐기고, 결혼식과 축제에서 춤을 추고, 수영하고, 마을의 땅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시간들이 그의 삶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성장을 통해, 가네쉬는 “움직임”을 삶의 근본적인 힘으로 감각하는 체화된 감수성을 키워왔습니다. 최근 그는 움직임이 모든 생명의 첫 번째 언어임을 깊이 느끼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두에 존재하는 언어로서.
“우리는 움직이기 때문에 존재한다, 우리는 살아있는 움직임이며, 끊임없이 진화한다.”
2016년, 그는 정식적이고 체계적인 무용 트레이닝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발리우드로 시작하여 락킹, 파핑, 크럼프, 그리고 힙합 등의 스트릿 장르로 확장해 나갔습니다. 구조화된 트레이닝의 한 편, 그에게는 몸과의 보다 직관적인 관계를 향한 끌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스텝을 기억하지 않아도 되고, 정해진 모양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첫 컨템포러리 댄스 스승인 Rahul Goswami와의 만남은 즉흥에 대한 초기 경험을 열어주었고, 신체를 통해 물리적·에너지적 차원을 탐구하는 방식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오늘날 그는 이러한 요소들이 일상의 삶에 존재하며 보편적인 운동의 원리로써 살아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솟아오르고 떨어지고, 흔들리고, 멈추고, 계속되고, 그리고 발전하는 것은 단지 운동의 질이 아니라, 삶이 자라고 변형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가네쉬는 인도 전역과 해외에서 훈련하고, 실천하고, 가르치고, 공연해 왔습니다. 즉흥은 그의 작업 중심에 깊이 살아 있으며, 솔로 작업이든 변화하는 몸들의 관계 속이든 그의 모든 창작 과정 속에서 숨 쉬고 있습니다. 이는 그의 몸–마음 그리고 삶의 실천의 핵심 요소입니다.
보다 최근에는 컨택 즉흥을 통해 진화적이고 계속되며 자라는 움직임의 힘에 대한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를 통해 몸과의 관계, 중력과의 관계, 땅과의 관계, 보편적 생명력과의 관계를 질문하고 새롭게 정의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5년부터, 가네쉬는 그의 파트너 김기영 및 여러 예술가들과 함께 컨택 즉흥 및 즉흥을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와 공연 예술 행사들(레지던시, 워크샵 등)을 공동 기획, 제작 및 진행하고 있습니다.
만 8살 때 할머니 손잡고 따라간 결혼식장에서 머리를 질끈 묶고 장구 치는 여자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 이후로 엄마를 졸라 장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는 내가 반한 것이 장구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무언가에 흠뻑 몰입해 있는 그 상태 자체가 나를 이끈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두드리기 시작한 악기는 춤으로, 노래로, 그리고 연희라는 장르로 이어졌다.
연희에서는 춤, 노래, 악기 연주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몸 안에서 동시에 이루어진다. 어릴 때부터 익히고 즐긴 한국 전통연희를 통해 소리와 움직임이 몸과 공간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는 감각을 자연스레 몸으로 경험해왔다.
대학에서 전통연희 공부를 마친 이후, ‘연희집단 갱’을 결성해 한국 사회에서 전통예술이 수행되는 방식에 대한 질문과 소리와 움직임이 지닌 고유한 힘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다양한 형식의 창작 작업을 이어왔다.
한편, 소리와 움직임을 향한 관심과 호기심은 전통연희의 틀을 넘어 비형식적 실천의 영역으로 이끌었고, 2018년부터 컨택즉흥을 본격적으로 수련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몸 공부는 점차 소매틱과 즉흥으로 확장되어, 이미 우리 안팎에 존재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몸을 통해 통과시키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나의 욕구와 계획을 넘어선 더 거대한 흐름이 삶을 이끌고 있음을 느낀다. 얼마 전 임신과 출산을 통해 친절하면서도 단단하게 생을 마주하며, 몸을 온전히 믿고 적극적으로 기다리는 과정이 지닌 힘을 깊이 경험했다. 이는 즉흥을 연습해온 몸이 삶에 건네는 선물인 동시에, 삶의 경험이 분명히 확인시켜준 즉흥의 본질이기도 했다.
매 시기마다 몸과 에너지가 스스로 변화하고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누군가를 품을 수 있는 하나의 공간이자 환경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아기를 낳고 돌보며, 비어 있는 몸으로 다른 존재를 듣는 연습이 매일의 삶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김영수는 네 아이의 아빠이자, 책방 집사로 듣기 공양에 능하다.
어린이문학을 즐기며, 책방 공동대표인 아내 고(故) 강정아와 함께 ‘책과아이들’을 지고 왔다.
그는 지난 27년 6개월간의 책방 활동을 통해 책마당과 문화공간(마을 도서관, 북콘서트 및 강연장, 독서나눔 소모임 공간, 갤러리 등)이 있는 독서 환경을 구축해왔다. 어린이부터 시니어까지, 연령별·주제별로 구성한 독서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도서관, 학교, 지역사회, 전국으로 파급함으로써 부산 지역과 대한민국의 독서 평생교육 문화 진흥에 기여하였다.
그 공로로 2017년 대통령표창, 2021년 부산시장 표창, 2025년 문화체육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저서로는 공동필자로 참여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동네책방』 (사계절)이 있다.
나에 대해 써야하는 일이 참 막막하게 느껴진다. 어렵다는 건 무엇을 진실이라고, 혹은 진실에 가깝다고 포착해야 할 지, 즉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냥 적다보면 가까워지겠지라는 바람이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모르겠는 상태를 마주하고 있다. 그것은 내가 하고 있는 주된 연습이다. 때로는 그런 상태가 혼란스럽기도 하다. 인간으로써, 얼마만큼의 주체적 반응과 행위를 일으킬 수 있고, 또 그와 동시에 물러나서 ‘듣는’ 상태를 함께 지혜로이 운용해 나갈 수 있는지에 관심이 있다. 나는 가능하다면 매일 이에 대해 무언가를 적으려고 한다. 이것은 큰 도움이 된다.
삶을 바라볼 수 있는 방식은 아주 다양할 것이다. 나는 그 안에서 다르게 느끼고, 감각하고, 의미의 무게를 가질 것이다. 내가 나를 이 세상의 주체로써 바라보든, 일부로써 혹은 무아로써 바라보든, 허무주의적이든 삶의 애찬론자가 되든, 나의 언어가 시이든 과학이든, 그것을 통해 삶 그 자체를 투명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묻게 된다. 그리고 그 만남이란 것이 없던 것을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며,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그것을 만남이라고 할 수 없음을 보다 겸손하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며칠 전 적었던 것을 나누고 싶다. 그것이 오늘의 나와는 가장 가까운 것 같다.
“나는 사랑을 따를 것이다. 심장에 귀 기울일 것이다. 얼굴을 통해 삶은 축복을 노래할 것이다. 그 축복을 온 몸으로 느끼고 노래할 것이다. 그 축복은 기쁨의 얼굴로, 때로는 슬픔의 얼굴로, 오만가지의 얼굴로 올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모두 느끼는 것이다. 느끼는 것은 따로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자연인 것이다.”
우리가 컨택 즉흥(Contact Improvisation)이라 부르는 형식 자체가 우리에게 강력한 깨달음을 드러내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탐구하고 있는 요소들—대지, 중력, 문화적·생물학적 정체성을 넘나드는 몸들; 우리의 상호관계성, 상호의존성, 상호연결성; 그 안의 하나됨과 개별성—이 그것을 드러냅니다.
이는 인간 세대를 통해 전해 내려온 지식에 대한 탐구이자, 동시에 그것을 비워내는 과정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현재의 세계—우리 자신, 지구, 그 자기적 힘, 그리고 광대하고 무한한 우주—와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형식 너머에는 훨씬 더 많은 것이 존재합니다. CI는 단지 시작일 뿐—우리가 계속해서 자신을 발견하고 배워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문입니다.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서 스스로를 발견해가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성취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창조자입니다—존재가 스스로를 계속 발견할 수 있도록, 삶을 위해 삶을 창조하는 존재입니다.
이 형식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은, 삶을 창조하고 돌보는 힘들과의 상호관계를 깨닫고, 발전시키며, 깊어지게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 실천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책임—이러한 힘들 속에서의 우리의 자리—그리고 존재가 그대로 존재하고, 성장하고, 진화하고, 변형될 수 있도록 지지하는 우리의 역할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실천을 통해, 그 안에서, 그리고 그 너머에서 우리는 계속해서—다시, 또다시—삶 자체와의 관계를 발견해 나갑니다.
이 형식의 시각적 이미지나 감각적 즐거움, 혹은 미적 표현—또는 그것이 어떻게, 어디서, 어떤 맥락에서 발전해왔는지에 집착하기보다는, 그것이 급진적이고도 깊은 영감을 주는 상태로 남아 있도록 허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반은 신체를 출발점으로 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전체성에 있습니다. 그로부터 우리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모두와의 다중적인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해 나갑니다.
우리는 종교 속에서 숭배되어 온 모든 신들입니다—각각은 다시 하나가 되고자 하는, 기억하고자 하는, 함께하고자 하는 갈망의 표현입니다. 보편적인 깊이 속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신성한 빛임을 알고 있습니다.
— Ganesh * Blue River